궁금한 세상 이야기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최수종 "정도전 정몽주의 브로맨스"

JOIN US 2020. 9. 7. 19:00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53회

#최수종 게스트

#정도전과 정몽주의 브로맨스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53회에서는 최수종님 게스트로 등장했답니다.

 

소백산 국립공원내에 자리잡은 부석사.

 

부석사 안양루에 오르면, 소백산 봉우리의 절경이 다 보입니다.

 

사계절을 아름답게 품고 있는 대한민국 10대 사찰인 부석사입니다.

 

설민석, 전현무, 김종민, 유병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영주 부석사에 모였습니다.

 

이 들은 이 곳에서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와 조선의 새로운 공신 정도전의 라이벌 특집을 시작했습니다.

 

역사 요정, 설민석이 그 당시 역사의 포문을 엽니다.

 

 


"고려말과 조선초를 넘나드는, 그 선이 되는데요"

"오늘은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와 조선의 새로운 공신, 정도전의 라이벌 특집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둘은 뜨거운 우정을 나눈 사이였습니다"

"평생의 벗이던 정몽주와 왜 등을 돌리게 됐는가?"

 

"그 비밀의 문을 열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때가 역사 좋아하는 분들에겐 가장 흥미진진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캐릭터가 나오는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에 전현무는 유병재에게 질문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몽주, 정도전 중 누구의 팬이었어요?"

 

"마지막에 감정이입이 돼서 그런지 약간, 정몽주 입장에 섰습니다"(유병재)

 

 

"전 드라마 보면서는 완전 정도전이었습니다"

"정몽주는 답답해서요"

 

이렇게 보는 관점이 다른 전현무와 유병재인데요.

 

"두 사람이 원래, 라이벌이잖아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우리만의 둘만의 리그지요"

 

이어,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합니다.

 

그 분은 바로 사극계의 시간여행자, 최수종이었습니다.

 

명실상부, 사극계의 왕인 최수종은 이 곳 부석사에 온 소감을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오니까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곳에서 태조 왕건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들은 무량수전 조사당벽화 소조여래좌상 등 많은 보물들이 있는 무량수전으로 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국보 제 18호라고 합니다.

 

 


국사시험에 잘 나오는 무량수전 곡선미의 절정인 배흘림기둥도 보입니다.

 

전현무는 태조 왕건역할을 했던, 최수종에게 질문합니다.

 

"왕건이 세운 고려는 어떤 나라인가요?"

 

"고려하면 딱, 생각나는 게 918-1392이요"

"고려의 처음과 끝의 연도가 그렇습니다"

 

"왕건이 918년에 건국했고, 1392년에 34대 공양왕까지 475년간 존속했던 나라였습니다"

"신라 말 토호의 아들이었던 왕건이 태봉의 왕인, 궁예의 부하로 있다가"

 

"918년에 궁예를 추방하고 왕이 되는 거지요"

"후삼국을 통일해 함께 어우르는 정치를 했습니다"

 

국호는 고려, 연호는 천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멋진 고려가 5백년 세월을 겪으면서, 점점 망국으로 갔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고려 망국의 안타까운 시기에 있었던,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것 같습니다.

 

왕건이 문을 열었던, 찬란한 고려가 고려왕조 500여년의 끝에는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으로 흥청망청 했었고, 끝없는 부패만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거기에 백성들이 기댈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여기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 정몽주와 정도전이 등장하는데요.

 

보통 라이벌이라 하면, 사이가 안 좋았을거라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 역사를 들여다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가깝고 믿고 의지하던 사이였던 둘이 엇갈린 역사, 운명의 장난속에서 정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할건데요.

 

선녀들 이야기로 돌아와 최수종은 정몽주, 정도전, 이성계 역할은 해보지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설민석은 이제부터 하게 될것이라며, 설 감독으로 변신하여 각자 배역을 정해 줍니다.

 

"사료 공부를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중에 정도전이 환생한 듯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최수종이 전현무를 보며 이야기합니다.

 

"옛어른들을 봤을때, 이런 상이었을 것 같습니다"

 

설민석이 생각한 정도전은 전현무, 정몽주는 최수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태어났던 고려 후기부터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둘이 태어났더니 나라가 없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있는듯 없는듯 했던 나라 고려였습니다"

"왜냐하면, 원나라 간섭기 100년동안은 왕 이름 앞에는 충성 충자가 붙었고요"

"왕의 이름조차 마음대로 정할수 없던 고려후기였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내부의 친원파였습니다"

 

권력있는 문벌의 세력있는 족속을 줄임말로 권문세족이라 했고.

 

 

토지가 권력이었던 권문세족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었지요.

 

울타리로 경계를 칠 수 없어 산맥과 하천으로 땅을 나눌 정도였습니다.

 

"권문세족들은 백성들에게 엄청난 수탈을 했습니다"

 

고려 말은 권문세족들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시기.

 

정몽주와 정도전이 태어나 보니 그 시대였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지주의 자식들이 중앙에 진출하고, 이런 신진세력을 신진사대부라고 합니다"

 

"신진사대부의 양날개는 정도전, 정몽주였습니다"

 

권문세족출신이었던 정몽주, 신진 사대부출신이었던 정도전.

 

원나라가 쇠락하는 가운데.. 권문세족은 친원파와 신진사대부는 친명파, 다르게는 대지주와 중소지주라고 분류할수 있었습니다.

 

혹시 어려운 설명이라면, 위에 쉬운 도표 설명이 있으니 참고 해주세요.

 

이름하여 부패세력과 개혁세력의 대립, 이것이 고려말의 첫번째 라이벌 구도라 할수 있습니다.

 

이 때 왕은 개혁정치를 했던, 공민왕 시대였습니다.

 

설민석은 공민왕이 원나라 간섭기에 반원 개혁정치를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고려시대에 왕의 세자로 태어나면, 의무적으로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황제곁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 공주와 결혼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고려왕실과 원나라는 피가 섞이게 되고"

"엄마의 나라 원나라에 도전을 할 생각을 못할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공민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고려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반원 자주정책을 펼칠수 있었습니다"

 

고려에 뿌리내린 원나라의 잔재를 걷어내려고 공민왕은 왕이 되고 변발부터 풀었습니다.

 

"원나라의 고려간섭기구였던, 정동행성이란 기관(일제때 총독부 같은 곳)폐지 시키고"

 

"군사를 일으켜 함경도 지방을 다시 빼앗기도 했습니다"

 

그때, 원나라는 새로 돋아나는 명나라 때문에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공민왕을 보며, 새로운 고려를 꿈꾸었을 정몽주와 정도전.

 

이때까지도 이들은 같은 개혁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날개가 중심을 잃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요..

 

 


이어 선을 넘는 녀석들은 삼판고택(세 명의 판서가 연이어 살아 붙여진 이름)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 곳은 정도전의 아버지인 정운경을 비롯한 황유정, 김담까지 3대를 이어온 세 판서의 집입니다.

 

혼돈의 고려에 나타나, 나라를 바꾼자, 정도전 그는 누구인가?

 

정도전의 신분은 오늘날의 동수저 정도 된다고 할수 있는데요.

 

정도전, 외할머니의 어머니 신분이 노비였습니다.

 

그래서, 그 꼬리표가 항상 그의 앞길을 막았었습니다.

 

그리고, 정도전의 성품은 낙천적이고 호방했습니다.

 

이어 설민석은 정몽주의 어린시절에 대해 설명합니다.

 

"보통,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하는데"

"정몽주는 안 가르쳐도 백을 아는 천재였습니다"

 

"과거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고려때 장례는 불교식으로 100일상을 치르는게 관례였는데"

 

그 때 막 성리학(유학)이 도입되었고..

 

"(성리학을 실천한)정몽주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고려 말엔 특이했던 거에요"

 

"그리고 나서 본, 과거시험에서 급제하는데"

"급제 정도가 아니라 초장, 중장, 종장 세 차례 연이어 장원급제를 합니다"

 

그래서 정몽주는 과거시험 준비하는 유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런 정몽주를 보며 꿈을 키우던 게 정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몽주의 찐팬이 됩니다"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나는데, 이미 장원급제한 스타였던 정몽주는 정도전을 벗으로 대해 줍니다"

 

이어 설민석을 유심히 관찰하며, 설명을 듣던 최수종이 한마디 합니다.

 

"현장에서 들으니까 귀에 쏙쏙 들어 오는데요"

"거기엔 설 선생님의 놀라운, 연기력이 있었네요"

 

"표정, 말 한마디에 빠져 들어요"

"최고다"

"비교도 너무 잘해"

 

그러면서, 설민석을 때려 웃음이 터지게 합니다.

 

딱딱한 역사 이야기에는 이런, 개그코드를 넣어줘야 하는것이 바람직 하지요.

웃는 얼굴에 침뱉을 사람은 없으니까요.

 

정몽주의 영향을 받은 정도전은 벼슬에서 물러나 시묘살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녀들은 정도전 시묘살이 터에 도착합니다.

 

자신의 뜻을 이어받은 후배가 기특했을 정몽주는 정도전이 시묘살이할때도 보살펴 줬다고 합니다.

 

정몽주 정도전, 두 사람의 브로맨스가 시묘살이를 기점으로 점점 더 돈독해집니다.

 

이 때 서로 주고받은 편지에도 그 브로맨스가 잘 나타나는데요.

 

정도전이 정몽주에게 올리는 글 중, 내용입니다.

 

"나의 벗 정몽주 형님은 불교가 흥하고 유교가 쇠하는 현실을 바로 하는데 적격자입니다"

 

"그 이유는 형님이 비록 높은 지위는 없다 하더라도 학자들이 본래부터 형님의 학문이 올바름에 감복했고 형님의 덕이 뛰어남에 감복했기 때문입니다"

 

"나처럼 용기가 없고 힘이 없는 사람도 세상의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현실을 비판할수 있는 것은 형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형님을 내신것은 참으로 우리의 복입니다"

 

다음은 정몽주가 정도전에게 보내는 답장의 글입니다.

 

"이것은 과찬이오"

"하지만, 아주 감격스럽고 기쁘오"

"삼봉(정도전)의 마음씀이 너무 고맙소"

 

"시묘살이는 어떻소?"

 

"사람들은 시묘살이가 시간낭비라고 하지만, 그 시간은 부모님을 생각하고 학숨을 연마할수 있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오"

"한시도 낭비하지말고 학문에 정진토록 하시오"

 

이렇게 두사람은 영주에서 개경까지 먼거리임에도 이런 우정어린,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미래를 꿈꿨을 두 사람인데요.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가운데 정몽주가 정도전에게는 운명의 책이 될, < 맹자 >를 선물합니다.

 

다음은  <맹자> 진심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

 

"이런 까닭으로 구민(들판의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가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고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

 

정도전은 정몽주가 보낸 <맹자>를 한자 한자 곱씹어가며 읽었고, 2000년전에 쓰여진 책 <맹자>는 정도전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맹자>의 내용중, 사람을 죽인 살인자와 정치를 잘못해 백성을 죽인 정치가는 같다고 말합니다.

 

무능한 정치가는 학살자와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도전은 여기에서 역성혁명을 떠올리는데요.

 

"임금의 허울을 쓰고 인과 의가 없는 자를 내모는 것은 역모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과 의가 없는 한 사내를 처단한것일 뿐이니"

 

이정몽주가 보낸 책 <맹자>를 가슴 뜨겁게 읽던 그때가 바로 정도전이 고려를 뒤집어 엎고 새로운 조선을 만들 구상을 했던, 시작점이 아니었을까요?

 

 

"정도전의 시묘살이가 끝난 즈음, 공민왕이 내시들에게 시해를 당하고, 공민왕의 어린 아들인 우왕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그 당시 실세였던, 이인임은 공민왕이 시해당한 사건으로 명나라에게 문책당할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이인임은 공민왕의 친명정책에서 친원정책으로 선회하는데, 이에 원나라에서는 뜻밖의 반응을 내놓습니다.

 

"공민왕은 반원정책에 앞장서며,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었기에 그런자가 목숨을 잃은 것은 시해당한것이 아니다"

 

 

원나라는 공민왕의 시해가 정당하다고 공표하면서 우왕의 책봉을 승인합니다.

 

그 책봉에 대한 승인을 하러 원나라에서 사신이 오는 장면에서 이인임은 이를 크게, 반깁니다.

 

하지만,  정몽주과 정도전은 이런 이인임에게 크게 반발하고 나섭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공민왕의 친명정책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때 목소리가 더 큰 사람은 정도전이라, 이인임은 그에게 이런 지시를 내립니다.

 

"목소리가 더 큰 정도전, 너가 원나라 사신을 직접 접대하라"

 

원나라 사신의 접대를 명받은 친명파 정도전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마땅히 원나라 사신의 머리를 베어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명나라로 압송하겠다"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하던, 정도전은 결국, 이인임에 의해 전라도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아끼는 벗 정도전의 유배를 가만히 지켜볼리 없던 정몽주도 상소를 올렸다가 귀양을 갑니다.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은 정도전은 유배지 전라도에서 인생 반전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데요.

 

"정도전의 첫번째 각성은 <맹자>였고"

"유배지에서 평범한 백성을 만나면서 정도전은 두번째 각성을 합니다"

 

유배지에서 만난, 한 농부와 정도전의 대화.

 

"여기에 왜 왔습니까?"(농부)

 

"이만 저만 해서"(정도전)

 

"혹시 당신 적군이 무서워서 도망간 군인이요?"(농부)

 

"아닙니다"(도전)

 

"그게 아니면 뇌물받다가 걸렸소?"(농부)

 

"그것도 아닙니다"(도전)

 

"아항, 그럼 자신의 힘은 알지 못하고 바른 말하기 좋아해서 이 모양이 된거로군"

 

이 시골농부와의 우연한 대화에서 정도전은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 내가 겸손하지 못했구나"

"백성들은 가르쳐야 하는 우매한 자들이 아닌"

"세상의 중심이 바로 백성이구나"

 

그래서, 정도전은 책속 내용들을 현실에서 배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것까지 다 좋았는데..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유배는 끝나는데 정계에 복귀가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전국을 떠도는 유랑생활을 9년이나 하게 됩니다.

 

그 9년동안, 정도전은 정치 경제 제도 문화 법률 병법 등의 설계를 시작합니다.

 

정도전에게 그때의 그 유배와 긴 유랑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 후에 새로운 조선도 안생겼겠네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세상 모든 일엔 인과관계가 뚜렷하게 있음을 또 한번 느꼈습니다.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고 역사에서 배웁니다.

 

 

"혼란스러웠던 고려말,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기려하고 깎아내리려 하는 사대부의 본성"

 

"그것을 사대부의 체계로 만들것이다"

"사대부는 왕을, 왕은 사대부를"

"또 사대부들끼리 서로 의심하여 견제하도록"

"하여 어쩔수 없이 부패와 비리를 저지를수 없도록"

"그런 관료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정도전에게는 그의 혁명을 도와줄 예리한 혁명의 칼이 필요했습니다.

 

고려 후기 돌아가는 상황은 왕은 힘이 없었고, 가장 큰 세력은 권문세족이었고, 그에 대항하는 세력은 신진 사대부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세력이 나타납니다.

 

바로 신흥 무인세력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북쪽에선 홍건족, 남쪽에선 왜의 침략으로 인한 잦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홍건족과 왜구를 막는 과정에서 돋보인 두 인물, 최영과 이성계였습니다.

 

여기서 정몽주, 정도전 이 들의 브로맨스 관계가 깨질수 밖에 없는 과정이 나옵니다.

 

정도전은 혁명의 칼로 이성계를 선택했고, 이후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할 끝판왕, 이방원이 등장하는데요.

 

< 다음 이야기는 54회에서 이어집니다 >

 

정도전과 정몽주의 브로맨스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글 읽으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