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세상 이야기

왓칭, 우리는 왜 남의 눈치를 볼까요?

JOIN US 2020. 8. 13. 13:02

 

#왓칭

#김상운

 

저는 심리에 대해서 궁금한것이 무척 많습니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를 가도 항상 심리 도서쪽으로 발이 갑니다.

 

서점에 가도 마찬가지이고요.

 

왜 그렇게 심리에 관심이 많았을까를 곱씹어보자면, 무언가가 어떤것이 나를 땡기고 있다고 할까요?

 

그렇게 내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서 도착한 곳이 김새해 유투브였습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3년전인것 같습니다.

 

요즘 그 분의 유투브는 조금 시끌 시끌 하던데요.

 

암튼 또 가다 가다 유투브 알고리즘이 왓칭 김상운님의 유투브를 소개시켜줘서 김상운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상운님의 이야기와 제 이야기를 섞어서 한번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왜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을 의식하게 될까요?

 

우리 주변에는 그런 그런분들이 참 많죠?

 

정말 저도 남눈치 남의식 정말 많이 하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런건 어쩔수가 없는 부분이라고 여기고 살지요.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꾸만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또 남을 의식하게 되죠.

 

이런일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이고 또 근원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요?

 

같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상운님 방송안에 어느 독자분의 이야기 입니다.

 

전 20대 후반의 여성입니다.

 

아직 취직을 못해서인지 남의 눈치를 아주 심하게 봅니다.

 

동네마트에 갈때도 창문으로 누가 지나가는 지 먼저 살펴봐요.

 

집을 나설때 혹시나 남들이 쳐다볼까봐 심장이 뛰고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남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것 같아서 시선을 돌릴수 없습니다.

 

마음이 점점 오그라드는것 같아 너무 답답해요.

 

우리는 왜 이토록 힘들어하면서도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남들을 의식하게 되는 걸까요?

 


사연에 대한 김상운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마음속에는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자하는 욕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욕구가 없다면 왜 남들의 눈치를 보고 남들을 의식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욕구는 즉 남들한테 사랑을 사랑을 받고자하는 욕구라는 얼굴입니다.

 

인정받고자하는 이런 욕구는 우리가 그처럼 애를 쓴다고 해서 채워질수 있는 걸까요?

 

사랑을 받는것이 남들을 통해서 가능한걸까요?

 

먼저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이제부터 어려운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되기전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가만히 되돌아 보세요.

 

여러분이 잉태되기전에 어디에 있었나요?

 

나는 어디에 있었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빈 공간, 텅 빈 마음만 보이죠?

 

우리는 그렇게 텅빈 마음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이 부분도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인데요.

 

김상운님이 그렇다하니 일단 그런 줄 알고 넘어갑니다.

 

텅빈 마음속에서 태어나서 어머니뱃속에서 아주 작은 이미지로 티끌만한 작은 이미지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점점 커져서 현재의 나에 이르렀습니다.

 

가만히 되돌아보세요.

 

아주 어릴때 10대때, 20대때, 30대때, 지나간 모든 세월을 다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지 않습니까?

 

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현재의 순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앉아있습니까?

아마도 방에 앉아계실텐데요.

 

저도 방에 앉아 있습니다.

이 방은 어디에 들어있습니까?

 

지금 저는 방안에  들어있는데요.

 

그렇다면 이 방은 어디에 들어있습니까?

방은 집이라는 건물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집이라는 건물은 어디에 들어있습니까?

 

이 건물은 지구라는 그 공간안에 들어 있지요.

그러면 지구는 또 어디에 또 어디에 들어있습니까?

 

지구는 무한한 우주공간속에 들어있지요.

그렇다면 우주공간은 어디에서 떠오른겁니까?

 

그 우주공간은 마음속에서 떠오르죠?

 

즉 무한한 우주공간은 무한한 마음속에 들어있습니다.

 

그 무한한 마음속에 모든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거기에 나도 들어있고 내가 사는 집도 들어있고 내 친구도 가족도 직장도 학교도 들어있고 산도 강도 하늘도 모든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저는 얼른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알것 같기도 모를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것들이 다 이미지로 들어있지요.

 

이미지로 들어있다가 내가 육안으로 보는 현실이라는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친구의 이미지를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친구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마음속의 이미지로 떠오르지요?

마음속에 이미지로 떠오르는데..

 

내가 내일 점심때 친구와 약속을 정해서 만난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럼 약속시간이 되면 마음속에 잠재되어있던 친구의 이미지가 육안으로 보는 살아있는 생생한 이미지로 변신하게 됩니다.

 

(진짜 어렵지요?)

 

모든것이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에 이미지로 잠재해있다가 내가 육안으로 보는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직장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직장이 내 이미지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이미지로 잠재해 있던 그 직장이 내가 내일 출근해서 일을 하게 되면 내 육안에 보이는 생생한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죠.

 

그러므로 모든것들은 다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미지입니다.

 

내가 남들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그 사람들도 다 내 마음속에 이미지이지요.

 

내 마음속에 들어있다는 얘기는 서로 분리시킬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나와 남들도 서로 분리시킬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의 마음속에 들어있으니까요.

 

마음을 칼로 자를수가 있습니까?

 

그럴수 없습니다.

 

마음은 근원의 빛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근원의 빛도 칼로 자르듯이 분리시킬수가 없습니다.

 

분리시킬수가 없는 마음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도 분리시킬수가 없는 것이지요.

 

분리시킬수 있는것처럼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질 뿐이지요.

 

왜냐면 나라는 이미지와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는 각자 색깔도 다르고 움직임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또 만지면 촉감도 다르니까요.

 

그건 왜그렇냐면 제가 말씀드렸듯이 모든것은 찰나 찰나 변화하는 빛의 진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김상운님은 만물은 빛으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지상파인지 어떤 방송에 출연하셔서 이 세상은 홀로그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빛의 진동이 다르고 각자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색깔을 이루고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물은 다르게 느껴지고 만져지고 그러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모든것들이 다 하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리된 마음상태가 될때나, 몸이 나라고 착각할때는 내 마음조차도 내 몸속에 들어있다라는 착각을 하게 되어서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각자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분리된 존재로 바라보게 되면 사랑의 단절로 이어집니다.

 

사랑의 단절은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모두가 근원의 빛 근원의 사랑 그 무한한 마음 무한한 사랑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늘 근원의 사랑속으로 되돌아가기를 갈구하고 있는데, 우리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착각하게 되면 우리가 갈구하는 근원적인 사랑을 찾을 곳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왜냐면 분리된 존재는 육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니까 그렇습니다.

 

 


육안에 보이지않는 마음이 없고 빛은 없다고 생각해버리니까, 우리가 갈구하는 그 무한한 사랑, 근원적인 사랑을 남들에게서 찾게 됩니다.

 

즉 육안에 보이는 남들한테서 자꾸만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찾아질까요?

 

남에게서 사랑이 잘 찾아지지 않으니까 더 애를 쓰며 고통스러워하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만들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자신을 나라는 존재가 분리된 몸과 마음이 아니라

 

무한한 하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다

 

나도 이미지고 다른 사람들도 이미지이다.

 

그래서 하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남들의 눈치를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

 

(남들도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미지인데 그 이미지를 왜 두려워합니까?)

 

라고 생각하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현실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현실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창조해낸겁니다.

 

우리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면 현실속에서도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현실이라는것은 마음속의 상태를 거울처럼 고스란히 비춰주는거니까요.

 

제 몸이라는 이미지도 제 마음속에 생각이 꾸며낸 이미지입니다.

 

만약에 제 마음속의 생각에 제 몸과 마음속에 이런 이미지가 내재되어있지 않으면 제가 육안으로 보는 현실로 내몸이라는 이미지가 나타날수가 없는것입니다.

 

육안에 보이는 모든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미지는 마음속에 다 내재가 되어있는 이미지들입니다.

 

무의식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들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그 이미지들을 한꺼번에 보는게 아니고 그 육안이 미치는 시야내에 들어올때만 생생한 이미지로 현실처럼 나타난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것이 다가 아니다.

 

육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그 이미지 가운데 육안은 아주 국한된 시야의 들어오는 일부만 보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남들에게서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남들을 찾아다니며 헤메지만, 이 욕구는 근원적으로 남들을 통해서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근원적인 사랑에 대한 갈구는 내 마음속에 들어있다.

 

내 마음의 시야를 무한히 넓히면 나는 무한한 마음과 하나가 되고 그 속에 모든것이 다 있다.

 

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속에 내가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있는 남들도 다 그 속에 들어있고 나도 그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알때 즉 나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을 명확하고 분명히 알때 우리는 남들의 눈치도 보지않게 되고, 남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수학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 왓칭으로 포스팅해보려고 하는데요.

 

이런 원리는 한번 듣고 흘리는 게 아니라 익숙해질때까지 곱씹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